
가을 햇살이 청명하게 퍼지던 2025년 11월 첫날, 충남 청양 칠갑산에는 이른 새벽부터 질끈 동여맨 배낭과 오래된 우정의 그림자가 겹겹이 쌓였다. 총동문산악회가 마련한 가을 산행에 120여 명의 동문들이 전국 각지에서 모였고, 그중에서도 유난히 눈에 띄는 이들이 있었다. 남강1회 동기 김성호, 이광태, 이상구, 조정일, 정종채. 젊음을 함께 불태운 이들은 이제 인생의 굽이굽이를 지나 중후함을 더한 채, 다시 만난 산 위에서 웃음꽃을 피웠다.
칠갑산의 오르막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낙엽이 잔잔히 깔린 숲길은 미끄럽고 공기는 차가웠지만, 다섯 늙다리 오빠들의 발걸음은 단단했다. 눈빛으로 서로를 북돋우고, 웃음으로 숨을 고르며 정상을 향한 한 걸음 한 걸음을 함께 만들었다. 등산이라는 행위가 단순한 걷기를 넘어서, 묵은 세월 속에 지켜준 관계의 무게를 되새기는 의식처럼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하산 후 어울어진 막걸리 잔에서는 갈라진 세월을 잇는 이야기들이 흘러나왔다. 늦가을의 햇살보다 따스한 기억들, 그리고 다시 한 번 이어 보겠다는 믿음이 오고 갔다. 정종채는 “이 몸이 다닐 수 있는 한, 함께 간다”고 했고, 동기들은 흔쾌히 잔을 맞부딪혔다. 그것은 약속이면서 다짐이었고, 무엇보다 이미 증명된 관계의 또 다른 시작이었다.
산은 세월을 말해주지 않지만, 사람은 세월을 버티며 친구와 길을 나눈다. 이날 칠갑산은 낙엽 위에 남은 발자국보다 더 오래 남을 이야기를 품었다. 총동문산악회의 이번 산행은 단순한 하루의 모임이 아닌, 다시 청춘을 걸었던 발걸음이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우정을 등짐처럼 메고 걸어간 다섯 사람, 그들의 흔적이 뚜렷하게 남았다.
